2021. 3. 8. 23:48


3월 8일
화장솜이랑 네일푸셔를 사고 atm에 가려고 외출을 했는데 날씨가 무지무지 좋았다. 반팔에 맨투맨만 달랑 입고 나가서 좀 추웠는데 견딜 만 했다. 그리고 아무튼 기분이 좋았다. 본조비 노래를 들으면서 걷는 것도 좋았고 농협 atm이 멀어서 좀 걸어야 하는 것도 좋았다. Run to the Hills를 들으면서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도 좋았다.
농협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꽃집이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향기가 너무 좋고 꽃이 예뻐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게 있나 찾아봤는데 다 멋있는 꽃들이어서 포기했다. 근데 버스정류장 쯤 가니까 다육이를 늘어놓고 파는 곳이 있길래 천 원에 다육이를 사 왔다. 아직 이름은 못 지었다. 뭘로 하지? 멋쟁이? 1학기 성적?
학교로 걸어서 돌아가려니 너무너무 멀고 아찔해서 마을버스를 탔다. 제2의학관 앞까지 덜컹덜컹 실려 갔다. 내려서 H스퀘어에 있는 신한은행에 갔다. 목적은 학생증 계좌 개설...
들어갔는데 안내하시는 분이 뭐하러 왔냐고 물어보고 외국인등록증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당황해서 없다고 하니까 다른 신분증은 없냐고 하셨다. 주민등록증이 있다고 했다.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요즘은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오는 시기라고 하셨다. 재미있었다.
창구 직원 분은 친절하셨구... 내 민증 사진 인식이 너무 안 돼서 다른 방법으로 직접 해주셨다. 아무튼 혼자서 계좌 개설을 할 수 있다니!! 멋쟁이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자연과학대학 건물에 가서 입학 축하 선물을 받았다. 이름 적는데 나 말고 한 사람이 받아갔더라. 별로 쪽팔린 일도 아닌데 좀 쪽팔리게 행동했다. 뻔뻔하게 얘기할걸... 아무튼 자과대 건물은 넓고 실험실은 불이 다 꺼져 있었지만 문 유리로 좀 훔쳐봤다. 멋있었다.
선물은 64기가 유에스비였다. 한양대 로고가 프린팅 되어 있었다.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5생까지 걸어오는데 하늘이 너무너무 예쁘고 날씨가 정말정말 좋았다. 기분이 좋았다.
돌아와서 '영화로 보는 서양의 역사' 녹화 강의를 처음으로 들었는데 너무너무 배우고 싶었던 주제와 내용이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첫 강의라 오티+개괄적인 설명 정도였는데 대체역사로서의 팩션을 다루시는 관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흥미롭고 유익하고 시원한 강의였다. 앞으로의 수업이 정말로 기대가 된다. 이런 강의를 들으려고 대학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학과 다중전공을 고민해 봤다. 일자리가 어쩌고 하는 것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질문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사학과를 다중전공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사학과를 다중전공한 물리학과 전공을 받아주는 직장은 어떤 곳일까? 나한테 어떤 일들이 생길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공부. 아직은 철없는 새내기여서 할 수 있는 생각인가 싶기도 하다. 물리를 배우면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배움이 즐겁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을까?
이과에 온게 잘한 일일까 싶을 때가 있다. 적성 따라 문과에 갔으면 더 좋은 대학에서 더 심장이 뛰는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리를 고집한 게 너무너무 짧은 생각이었던 건 아닐까?
에휴... 대충 살되 후회하지 말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치 내가 연대에 가지 못한 것처럼. 아쉽지만 후회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서울대에 갔어도 노력에는 끝이 없고 앞길은 막막하고 삶은 가혹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대학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지!
다전 복전 융전은 정말정말 깊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 어찌됐든 세상은 공대생에게 열려 있으니...
그보다 더 고민인 건 노캔이 고장난 내 보스 헤드셋을 어떻게 하냐는 거다. 에휴..... 일 년도 안 쓴 것 같은데..... 에이에스 맡겨야지 뭐 어떡해.... 울고 싶다....
그리고 휴먼카인드를 읽었고 정말정말 행복했다. 세상이 좋은 곳일 수도 있다는 관점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당장 내가 살면서 만난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들인지 알면서도 세상은 생각보다 괜찮은 곳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세상을 좋은 곳으로 보고 사람들이 세상을 좋은 곳으로 보면 세상이 정말 좋은 곳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선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으며(선한 인간들이 살아남아 왔으며)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착하고 점잖을 수 있다는 요지의 책인데 놀랍게도 나는 이런 관점을 정말 좋아한다... 눈물이 나게 좋아한다. 엠비티아이 얘기를 하긴 싫지만 이런 이상주의가 INTJ의 특성일 수 있나? 하는 생각도 좀 한다. 사실 내가 세상을 너무 얄팍하게 알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왜 비관론이 '현실'적이고 낙관론이 '비현실'적인 세상이 됐을까? 낙관론이 현실적일 수도 있는 거 아냐?
물리학과따리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씻고 자야지!
아무튼 행복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구나 얘들아!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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