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6. 22:51
3월 6일
이모씨(제주도 이모씨와는 다른 이모씨이다)랑 퓰리처상 사진전을 보고 라멘을 먹고 강남 메가박스에서 미나리를 봤다.
서울에 올라온 후로는 세상이 너무너무 무섭다고 느끼는 날이 많다
세상이 무섭다기보다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나!라는 사람 하나를 나 혼자 책임지고 먹이고 입히고 씻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섭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샤워를 해야 한다는 게... 밥 먹을 돈을 벌고 깨끗한 변기를 찾고 샤워 할 집을 구해야 한다는 게... 죽을 때까지... 그 모든 것에 실패해도 나랑 같이 굶어죽어 줄 사람은 없다는 게... 결국 나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게...
무섭지 않니 얘들아? 나만 이런 걱정을 하는 건 아니겠지?
다들 무섭고 힘들지만 열심히 매일매일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해서 너무너무 어려워 보이는 일들을 해내는 거겠지?
나도 죽을 힘으로 살아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대입에 성공한 기억보다 대학 5개 떨어졌던 기억이 나한테 너무너무 큰가 봐...
어쩌다 이렇게 약한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다... 요즘 많이 울어 나는...
그래도 열심히 살아 볼게
아무튼 사진전은 참 좋았다
저널리즘이 어때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꼬집은 것 같았다. 물론 나는 한낱 물리학과 새내기따리 이지만...
1917이나 조조래빗이나 풀 메탈 재킷 같은 영화가 많이 생각났다. 베트남전 사진을 보면서는 피키 블라인더스가 생각나기도... 전혀 다른 시대이긴 하지만... 아무튼 전쟁이란 그런 것 아니겠니... 어느 시대에든 전쟁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들이 있었잖니
사실 풀 메탈 재킷이랑 제일 많이 닿아 있는 전시인데도(베트남전 배경, 종군기자 소재 등등) 풀 메탈 재킷은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본 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입구에서부터 '이매진'이 들리길래 하하... 그 모순적인 행보에도 존 레논은 여전히 평화의 상징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폴 매카트니>>>>>>>>>>존레논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고 싸가지 때문에 그 안경 낀 아저씨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익숙한 가사를 들으면서는 이 전시에 참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잘 어울려야만 하는 시대적 배경을 지닌 곡이지만...ㅋㅋ..
20세기를 배경으로 한 뭔가를 볼 때는 전부 레데리 아니면 락밴드를 생각하면서 시대의 분위기를 떠올리는 습관? 경향? 아무튼 그런 것이 있다. 그 시대에 아는 것이 그거밖에 없으니까 당연하지만... 사실 그마저도 잘 모르긴 하지만 그 시대를 기억할 직관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건 참 괜찮은 것 같다. 1965년 사진을 보면 하하..러버소울의 연도구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쫌 웃기고 민망하다.
많은 사진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지만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진이라고 하면 역시 부상당한 군인을 위해 날아드는 총알 사이에서 기도를 하던 신부!! 의 사진이다. 종교인으로서도 느끼는 바가 컸지만 전쟁과 인간애라는 대비적인 이미지를 너무너무 잘 보여줘서 종교를 떼어놓고서도 참 생각이 많아지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갖는 대상화의 이미지가 커서 죽음의 순간을 촬영한 사진을 볼 때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 사진으로 변화할 세상을 염두에 둬도 아무튼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생리적 반응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퓰리처상 수상이 남긴 건 잠들지 못하는 밤 뿐이라는 인터뷰도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저널리즘이라면...
특종을 잡기 위해 하루종일 경찰 수신기를 붙잡고 살았다는 인터뷰를 보면서는 나이트크롤러 를 떠올리기도(ㅋㅋ;;) 했다. 재질이 좀 다르긴 하지만... 기자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미나리를 보면서는 전혀 울지 않았는데 보고 나서 지하철에서 폴 매카트니 노래를 들으면서는 쪼끔 눈물을 훔쳤다.
영화 자체의 어떤 것보다는 낯선 곳에 떨어져서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에 공감해서 운 것 같다. 요즘 내가 이렇다니까...
잔잔하고 따뜻하게 흘러가는 영화가 낯설면서도 의외로 흥미진진했다. 이쯤 되면 아주 큰일이 날 것 같은데... 하는 구간에서 특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머쓱하기도 ^_^;;
매우 스티븐연스러운 영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꼬질꼬질하고 구질구질하지만 딱히 밉지는 않고 에휴... 니가 그렇지 뭐. 하면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재수학원에 가 있는... 스티븐연을 정말정말 좋아해서 코믹콘도 다녀왔지만 인종차별 터져서 탈빠한 친구가 생각난다. 잘 지내고 있니?
서사적인 감동보다는 그 자체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영화였던 것 같다. 윤여정이 나와서 더 그런지... ㅎㅎ... 아무튼 이 영화를 너랑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친구야! 우리 또 좋은 영화 보러 가자!
얘들아...니네도 알겠지만... 나 서울 올라와서 쪼끔 외롭다... 나랑 자주 놀아줘... 맛있는 거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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