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힘내서 살아보자!!

3월 6일

이모씨(제주도 이모씨와는 다른 이모씨이다)랑 퓰리처상 사진전을 보고 라멘을 먹고 강남 메가박스에서 미나리를 봤다.

서울에 올라온 후로는 세상이 너무너무 무섭다고 느끼는 날이 많다
세상이 무섭다기보다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나!라는 사람 하나를 나 혼자 책임지고 먹이고 입히고 씻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섭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샤워를 해야 한다는 게... 밥 먹을 돈을 벌고 깨끗한 변기를 찾고 샤워 할 집을 구해야 한다는 게... 죽을 때까지... 그 모든 것에 실패해도 나랑 같이 굶어죽어 줄 사람은 없다는 게... 결국 나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게...
무섭지 않니 얘들아? 나만 이런 걱정을 하는 건 아니겠지?
다들 무섭고 힘들지만 열심히 매일매일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해서 너무너무 어려워 보이는 일들을 해내는 거겠지?
나도 죽을 힘으로 살아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대입에 성공한 기억보다 대학 5개 떨어졌던 기억이 나한테 너무너무 큰가 봐...
어쩌다 이렇게 약한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다... 요즘 많이 울어 나는...
그래도 열심히 살아 볼게


아무튼 사진전은 참 좋았다
저널리즘이 어때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꼬집은 것 같았다. 물론 나는 한낱 물리학과 새내기따리 이지만...
1917이나 조조래빗이나 풀 메탈 재킷 같은 영화가 많이 생각났다. 베트남전 사진을 보면서는 피키 블라인더스가 생각나기도... 전혀 다른 시대이긴 하지만... 아무튼 전쟁이란 그런 것 아니겠니... 어느 시대에든 전쟁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들이 있었잖니
사실 풀 메탈 재킷이랑 제일 많이 닿아 있는 전시인데도(베트남전 배경, 종군기자 소재 등등) 풀 메탈 재킷은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본 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입구에서부터 '이매진'이 들리길래 하하... 그 모순적인 행보에도 존 레논은 여전히 평화의 상징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폴 매카트니>>>>>>>>>>존레논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고 싸가지 때문에 그 안경 낀 아저씨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익숙한 가사를 들으면서는 이 전시에 참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잘 어울려야만 하는 시대적 배경을 지닌 곡이지만...ㅋㅋ..

20세기를 배경으로 한 뭔가를 볼 때는 전부 레데리 아니면 락밴드를 생각하면서 시대의 분위기를 떠올리는 습관? 경향? 아무튼 그런 것이 있다. 그 시대에 아는 것이 그거밖에 없으니까 당연하지만... 사실 그마저도 잘 모르긴 하지만 그 시대를 기억할 직관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건 참 괜찮은 것 같다. 1965년 사진을 보면 하하..러버소울의 연도구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쫌 웃기고 민망하다.

많은 사진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지만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진이라고 하면 역시 부상당한 군인을 위해 날아드는 총알 사이에서 기도를 하던 신부!! 의 사진이다. 종교인으로서도 느끼는 바가 컸지만 전쟁과 인간애라는 대비적인 이미지를 너무너무 잘 보여줘서 종교를 떼어놓고서도 참 생각이 많아지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갖는 대상화의 이미지가 커서 죽음의 순간을 촬영한 사진을 볼 때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 사진으로 변화할 세상을 염두에 둬도 아무튼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생리적 반응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퓰리처상 수상이 남긴 건 잠들지 못하는 밤 뿐이라는 인터뷰도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저널리즘이라면...

특종을 잡기 위해 하루종일 경찰 수신기를 붙잡고 살았다는 인터뷰를 보면서는 나이트크롤러 를 떠올리기도(ㅋㅋ;;) 했다. 재질이 좀 다르긴 하지만... 기자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미나리를 보면서는 전혀 울지 않았는데 보고 나서 지하철에서 폴 매카트니 노래를 들으면서는 쪼끔 눈물을 훔쳤다.
영화 자체의 어떤 것보다는 낯선 곳에 떨어져서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에 공감해서 운 것 같다. 요즘 내가 이렇다니까...

잔잔하고 따뜻하게 흘러가는 영화가 낯설면서도 의외로 흥미진진했다. 이쯤 되면 아주 큰일이 날 것 같은데... 하는 구간에서 특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머쓱하기도 ^_^;;

매우 스티븐연스러운 영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꼬질꼬질하고 구질구질하지만 딱히 밉지는 않고 에휴... 니가 그렇지 뭐. 하면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재수학원에 가 있는... 스티븐연을 정말정말 좋아해서 코믹콘도 다녀왔지만 인종차별 터져서 탈빠한 친구가 생각난다. 잘 지내고 있니?

서사적인 감동보다는 그 자체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영화였던 것 같다. 윤여정이 나와서 더 그런지... ㅎㅎ... 아무튼 이 영화를 너랑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친구야! 우리 또 좋은 영화 보러 가자!


얘들아...니네도 알겠지만... 나 서울 올라와서 쪼끔 외롭다... 나랑 자주 놀아줘... 맛있는 거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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