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2. 00:07


상단의 글은 본좌가 2019년 2월에 에버노트에 남긴 글이다.
이외에도 이와 비슷한 주제의 글이 2017년 경부터 꾸준히 남아있다.
나는 컨디션이 좋을 때는 자존감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뭐든지 잘 해내는 사람이다. 실제로 음악과 체육을 제외한 분야는 뭐든지 빠르게 배우고 평균 이상으로 해낸다. 말도 잘한다. 글을 잘 쓰고 특히 주장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영화를 보고 내 생각을 남기는 것도 즐겁다. 주목받는 걸 좋아하고 칭찬받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나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운도 좋고 효율도 좋다.
그런데 한 번 우울감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보통 시작은 자학이다. 나는 멍청하고 할 줄 아는 게 없으며 이뤄낸 것도 없고 해낼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한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잠을 못 잔다. 자려고 누우면 자꾸 나를 미워하게 된다. 짜증이 심해지고 작은 일에 화를 낸다. 물건을 부수거나 벽, 책상을 치지 않으면 감정을 조절할 수 없다. 쉽게 운다. 부모를 원망한다. 실패한 기억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린다. 자해를 하기도 한다.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구체적으로 자살 계획을 세운다. 몇 시에 일어나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유서에 뭐라고 적을 것인지 생각한다. 그러곤 힘이 없어서 그냥 잠든다.
이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산 지 벌써 4-5년이 되어간다. 상황이 심각했던 때도 있었고 좀 나았던 때도 있었다.
엄마가 늘 왜 그렇게 뭐든지 잘하려고 하냐는 말을 했었다. 그런 것도 같다. 왜 뭐든지 잘하려고 하지?
좀 모자라고 둔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 글은...
앞으로 겪을 상황에서 내 상태가 어떤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썼다.
신기하게도 우울은 일단 사라지면 내가 힘들었는지 어땠는지도 기억이 흐릿해진다.
그래서 매번 내가 덜 힘든 것 같고, 아직 덜 고생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입시를 무사히 끝냈으니 하는 생각이지만, 참 고생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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