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7. 18:01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2020년이 끝나갑니다.
그 누구보다 호들갑떨고 개지랄했던 나의 입시도 끝나갑니다.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을 겪었고 또 나름대로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왔네요... 세상일이 늘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단 걸 뼈저리게 느낀 일 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모든 일이 노력한 만큼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100의 노력을 해도 결과는 50이 나올까 말까이고 또 누군가는 운좋게 150을 얻어 가는 것이 슬프지만 세상살이인 것 같습니다.
축하합니다 그거 한 문장에 사람 마음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참 웃기는 일입니다... 몇날 며칠을 눈물짜고 욕하고 화내고 온갖 지지리 궁상을 떨던 사람이 한순간에 세상을 통달한 사람처럼 인생을 돌아보는 글을 쓰는 것도 참 웃깁니다
어떤 것들은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뿌듯한 감정이나 보람이나 감사함이나... 이런 것들도 눈앞이 깜깜한 상황에서는 느끼기 힘듭니다 정말루... 아무리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지만 당장 재수가 코앞에 있는 사람한테 본인이 걸어온 길이 보이기나 하겠어요
천장까지 쌓아 놓은 책들도 몇 시간 전까지는 죄(재)수의 탑... 나무야 미안해의 탑... 후회의 탑... 이런 것으로 보였는데 이제는 내가 해낸 또 하나의 업적! 이런 것으로 느껴집니다. 정말 웃기지요.
그까짓 대학이 뭐라고... 이런 말도 이제는 좀 할 수 있습니다 ㅋㅋ
또 그렇게 힘들다고 염병을 떨고도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어준 스스로에게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특히 지난 이 주 정도는 평생 겪은 어떤 정신병보다 괴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아있는 상태였습니다. 죽을 배짱이 없다는 단점이 또 한 번 자신을 살렸네요...
그간 트위터에 싸지른 모든 정신병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나도 모르게 적었던 '내가 남들보다 뭐가 못났나, 뭘 그렇게 대충 했나' 그런 요지의 글입니다.
정말로 앞이 깜깜한 상황에서 결국 떠올리게 되는 것은 불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미움인 것 같습니다.
5광탈의 상황도 다 하느님이 주신 거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려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네요. 이럴 거면 연대 예비는 왜 주셨나 싶어 좀 속상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끝까지 하느님을 믿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겠어요... 라고 변명을 해 봅니다.
기억나는 다른 생각으로는 '나는 특별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가 있습니다. 남들은 6광탈해도 나는 기적적으로 연대 갈 줄 알았는데, 나는 좀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도 남들과 똑같은 버러지였다. 이런 생각을 좀 했었습니다. 굉장히 학벌주의적이고 운명론적이고 소시오패스스러운 발언이지만 사실입니다... 친형제가 재수끝에 연대 장학생이 된 것처럼 나도 대충 멋지게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기대가 서울대 연대라는 정신나간 우주상향지원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제가 연대, 한양대 최초합을 받았다면 이런 돌아이같은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겠지요? 나는 우월한 사람이고 미개한 대중과는 다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요? 하느님이 저를 5광탈의 시험에 들게 하심으로써 이런 미친년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으신 것 같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겠습니다.
긴 시간 끝에 얻어낸 스스로의 답은 결국 '엄마 말 잘 듣자'입니다. 엄마가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 그랬는데 맨날 처 울고 성적비관자살시도 하고 궁상떨은 것이 참...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또 그 상황에 마주치면 그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말도안되게 비관적인 생각만 하고 엄청나게 자책하고 자살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는 그런 습관은 이제는 조금씩 버리고자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또 어떤 일을 겪든 감사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성당도 좀 나가구요... 이 글만 보면 저를 무슨 미친 가톨릭광신도로 생각할 것 같은데 성당 안 나간지 10년은 되었습니다. 초등부 때 세례받고 한 번도 안 간듯. 그냥 힘든 일을 겪으니 종교로 회귀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돌아보는 글은 이대 합격을 받지 못했다면 쓰지 못했을 글입니다. 당장 눈앞이 좀 밝아지고 미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으니 하는 말입니다. 어제까지는 수만휘에서 이딴 글 봐도 죽었으면 좋겠다 기만자 쉑... 이러면서 핸드폰 뒤집었습니다. 언제나 스스로가 가장 슬프고 괴로운 사람들의 입장까지도 돌아보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축하합니다 보자마자 나 붙었어... 하고 눈물 와아앙 터뜨렸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어머니도..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지켜봐준 사이버 가족들도 모두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죽지 말고 살아서 봅시다.
'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신차린 연말 일상 (0) | 2020.12.30 |
---|---|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0) | 2020.12.20 |
사람은 순간을 사는구나... (0) | 2020.12.03 |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0) | 2020.11.28 |
능수 2주전 (0) | 2020.11.20 |